2월 16일 설 특집

외국에 살면 확실히 한국의 명절과는 멀어진다. 한국 뉴스를 듣거나 한국에 있는 가족과 대화하지 않으면 설인건지 추석인건지 알길이 없다. 작년에는 설 즈음에 요아반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세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손을 배에 포개고 넙죽 업드려 절을 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멋지게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하면 더할나이 없이 좋으련만 매년 정신없이 크는 아이들에게 한복을 구해 입히는 것도 외국 생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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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한국학교 입니다.

 최근 플라톤국가론에 적혀진 말이 너무 좋아 적어놨었다.  교육은 단지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기본원리이자 핵심이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우리 브레멘 한국학교는 독일 현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의 뿌리를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인의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세계화된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노력하고 주 교육내용은 한국어, 한국사 그리고 한국문화이다. 학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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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소풍이야기

2017년 5월 27일 요아 일기브레멘 한국학교 식구들이 함께 소풍을 갔습니다. 소풍은 작년과 같은 부엉이 카페였습니다. 부엉이 카페는 식당도 화장실도 있고 놀이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친구들이 마구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브레멘 한국학교 소풍날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여름의 좋은 날씨같았습니다.  11시가 되자 친구들과 부모님들은 부엉이 카페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친구들 몰래 보물을 숨겨놓느라 진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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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한국학교 교가 이야기

작년에 이 광택 선생님덕에 알게 된 분이 있다. 직접 소개해 주신 건 아니고 작곡가며 화가 분이 있다는 것만 말씀하셨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선생님의 연락처가 나오길래 무작정 전화를 했었다. 한국학교 학예회에서 선생님의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연주자가 없어 곡을 연주하는 것은 무산되었지만 그렇게 선생님과 인연은 이어졌다. 선생님은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나 역시 코가 석자인지라 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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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선생님 이야기

김영희 고문님과 엄마를 애국자로 만들었던  아이들 우리학교에는 고문님이  계신다. 브레멘에 오래산 터줏대감이시며 학교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주시려 노력하신다. 브레멘 한국학교 입학한지 2년차 되는 아이를 둔 학부모이자 교장이 된지 막 4개월이 지난  정말  멀 잘 모르는 회원인 나는 고문님과 개인적으로 대화는 커녕 얼굴인사도 나눈적이 없었다. 교장이 되고 처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고문님은 학교와 가까이 사신다는 이유로 한번 놀러오마 했지만 늘 그렇듯이 일상이 그런 기회를 줄리는 만무했다. 그러던 중 재독 교장협의회에서 25주년 백서 원고를  받는다는 메일을 받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교 연혁도 좀 써달라는데 아는 게 없었다. 고문님께 전화를 했다. 고문님은 학교에 관한 산 증인인지라 해주실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고문님은 학교가 설립될 1983년 당시 설립자인 이광택님과 뜻을 같이 한 분들 중  한 분이었다고 했다. 고문님은 83년도에 큰아이를  낳은터라 그 아기와 함께 이광택님을 도왔다고 했다. 이광택님 역시 아이들은 어렸지만 한글학교를 만드시는데 앞장섰다고 했다. 네 다섯 가정이 함께 하셨다고 했다. 브레멘 대학 법대 박사과정 학생이셨던 이광택님은 바로 브레멘 지방법원에 단체로 등록하셨다고 했다. 그당시 만들어진 정관은 단체 운영의 기본이 되었다.  어쩌면 작은 학교지만 지금껏 명맥을 이어올수 있었던 것도 정식 단체 로 등록하신 설립자분들의 노고덕분일 것이다.  지금 이광택님은 국민대학교 법과대에 명예교수로 계신다. 학교 개교할 때가 어떠했는지  물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광택님의 아이들은 한글학교를 기억하는지도 묻고 싶다. 개교에 참여하신 고문님은 83년도에 태어난 큰아이가 17살이 되는 해까지 학부모로 계셨고2000년도 초에는  4년간 학교 교장을 하셨다. 공식적인 학교주소를 여전히 고문님댁 주소로 쓰고 있고  지금까지도 고문으로 도와주시고 계시니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을수가 없다. 내가 도움을 청하고자 전화를 했을 때고문님은  따님이 있는 미국에서 막 귀국을 하셨다고 했다.  학교 역사가 궁금하다고 했다.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있진 않다고 하셨다.  그저 당시에 어떻게 만드실 생각을 하신건지 알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내주신다고 했다.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학교 수업이 있는 금요일 오전에 고문님께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따로 보지말고 오후에 직접 학교에 오시겠다 했다. 고문님댁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지라 새 교장 얼굴도, 요즘 학교 분위기도 보실겸 들르신다 하셨다.  학부모 세미나가 수업과 맞물려 계획되어 있긴 했지만 나는 영상으로 진행되는 세미나  내용을 미리 봤으니 문제될것도 없었다. 물론 세미나 진행때문에 대화가  종종 끊어졌다.고문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지면을 빌어 고문님께 사과하고 싶다.   모든 아이엄마들이 그렇지만 아이들 이야기할때 가장 빛난다. 고문님은 학교가 개교될 당시를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문님의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학교를 다녔는지 이야기하셨다.   지금은 성인이 된,각자 자기 터전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고문님의 아이들.  고문님은 당시 다른 분들처럼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일하고 계셨는데 아이들이 태어났어도 돌볼사람이 없어 한국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5년간 도와주셨다고 했다. 당연히 어머니는 독일어를 못했고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했다고 했다. 고문님은 그 당시 규칙을 만드셨다고 했다. 집안에선 한국어, 집밖에선 독일어. 아이들도 잘 따라 주었고 한글학교를 다니면서 더 발전하는 모습에 뿌듯했다고 했다. 특히 작은아이 경우 지적장애가 있다고 한다. 기대 하지 않았는데 한글학교를 다니기 시작 후 6개월만에 글을 읽었다고 했다. 잘못들은 건가 싶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신문을 가져와 보여줬다고 했다. 차근 차근 읽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고 했다. 한글학교 선생님들은  장애인 교육 전공자도 아니었는데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가르치셨다고 했다. 조금 늦은 아이었는데도 하나하나 신경써주셨다고 했다.작은 학교의 큰 장점이 아닐까.  큰아이가  6살인가 되던해에 큰아이랑 처음으로 한국에 갔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금도 고향에 가는길 갔다오는 길은 항상 그렇지만 당시엔 그저 방문하는 것인데도 바리바리 큰 이민가방을 두개나 가져가셨다고 했다. 세관이 지금보다 심해 일일이 검색을 당했다고 했다. 고문님도 세관 검색대에서 짐을 풀고있는데 그걸 보던 큰아이가  세관원에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저씨 우리엄마는 돈이 없소, 그래서 머 값나가는 물건도 없당게..“ 말했다고 했다. 아이 사투리에 깜짝놀란 세관원은 아이 여권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한국방문인걸 알고는 더 놀라면서 „ 어이쿠 너는 정말 한국말을 잘하는구나.어디서 배운거야?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다니 엄마가 참 잘가르쳤어. 너희 엄마는 애국자야 애국자 “ 라며  특별히 검색하지 않고 통과시켜줬다고 한다. 별 문제 없이 통과되었다는 기쁨보다 아이덕에 갑자기 애국자란 소리를 들은 고문님은 뿌듯하기가 이루 말할수없었다고 했다.  그런 큰아이는 한국에 가도 기죽지 않고 한국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고 했다. 자주 못가는 고향이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한번씩 다녀오면 브레멘을 가로질러야 갈수있는,  집 반대 끝에 있는 있는 한국학교 다니는게 힘들지도 않았다고 했다. 큰아이는   17살 아비투어를 보기 전까지 한글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사춘기가 되던 시절은 여느 아이들 처럼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아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문님이 걱정할 새도 없이 그 시기를 스스로 극복하고 아비투어 보기전까지 다녔다고 했다. 한글학교다니는 목적을 스스로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 후 의대에 진학였다.  의대 재학중에 실습학기를 한국의 아산병원에서 보냈다고 했다.  병원엔  큰 아이를 포함 다른 여러나라에서 온 한국계 학생들도 많았는데 유독 한국어에 문제가 없던 큰아이는 교수님들과 여러 관계자 분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했다. 게다가 관계자분들의 회의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했다고 했다.  한 교수님이 큰아이의 한국어를 칭찬했다고 했다. „ 자네는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우리가 일 하는데도 특별히 배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편해. 근데 어디서 그렇게 한국말을 배운거지?“   큰아이는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단다. 남편없이 이역말리 타향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모국어를 잊지 않게 해준 어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교수님은 큰 감동을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점심 식권을 큰아이가 있는 동안 줬다고 했다. „이건 어머니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있는 동안 내 점심을 너 먹거라 . 어머니가 정말 널 뿌듯해하겠어. 이렇게 잘크고 한국말도 잘해서 내가 뿌듯한데 어머니야 오죽하시겠니. 어머니가 애국하신거야. 애국자란다. “  지금 그 큰아이는 의대를 잘 끝내고 의사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미국 대학에서 연구중이라고 했다. 독일에 돌아와서는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고문님의 큰아이가 나는 궁금해졌다. 아이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어는 무엇일까? 독일에 돌아오면 어머니 옆으로 오는거냐는 물음에 고문님은  큰아이의 제 2의 고향인 뮌헨으로 간다 하셨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나의 소망에 고문님은 언젠가 자기를 브레멘에 보러 오면 학교에 데려오마 하면서 답하셨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개인적으로 성인반을 수업한지 꽤 되었다. 용돈도 벌고 독일사람도 만나자며 시작한 일이 8년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엔 독일어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쉽진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한국을 알려하는 학생들이 기특했다. 성인반을 수업하다보면 미쳐 어린시절 한국어를 배우지 못해 성인이 된후에야 배우러 오는 경우가 있었다. 종종 그들에게 팁을 얻기도 한다. 한 친구는 어머니가 한국분이었는데 어린시절 한글학교 가는 것이 정말 싫었다고 했다.  절대로 한글학교엔 강제로 보내면 안된다고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아이랑 합의가 있어야한다고 했다.  아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친구는 참 재미있게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추어탕이라고 했다.  한국의 젊은 여자 아이들은  피자나 외국음식을 많이 좋아하는데 이 친구는 국물이 좋다고 했다. 나는 아저씨 식성을 가졌다고 놀렸다. 그랬더니 „저도 알아요.“ 나를 만난 그날도 한국 식당에서 도가니 탕을 주문했었다. 다른 한 친구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 대신인 이모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한국어가 부족했다.  이모도 부담스러워했다. 가끔 나를 통해 조카 안부를 물으시곤 하는데 마음이 그럴때 마다 참 … 그런 학생들을 많이 만나서 일까? 우리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교장이 되면 아이들이 스스로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이 한글학교에서 많은 추억을 가졌으면 한다. 아직 교장이 된지 몇개월 되지 않았지만 열정적인 선생님들과 조금식 변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우리 고문님 처럼 아이들 때문에 애국자가 되는 일까지는 기대하고 싶지 안다. 다만 아이들이 컸을때  한국어를 배우도록 노력한것이  아이들에게 „참 다행이다“라고 평가되었으면 좋겠다. 고문님의 개인사를  글로 쓸수있게 허락하신 고문님께 감사드린다.  이글은 김영희 고문님의 기억을 토대로 작성되었기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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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설립자 이광택 선생님 이야기

브레멘 한국학교 설립자이신 이광택 교수님께 선물해드린 머그컵이다. 교수님께서 책장에 잘 올려놨다고 하시며 사진을 보내셨다. 사용하시다가 깨지면 또 선물해드릴 수 있는데..      1월 말부터 교장직을 위임받은 나는 2월초 재독교장협의회 회장님으로 부터 협의회 25주년 기념 백서 원고를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다.무엇을 써야하나 고민을 잠깐 하긴 했지만 위임받은 학교일과 개인적인 일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4월 말쯤 사무총장님으로 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으면 한다는 메일을 받고 심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고내용은 둘째치고 학교 연혁을 써야한다는데 아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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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공개수업 이야기

교장이 되고 두번째 학교 공식 행사였다. 1번째 공식행사는 소풍이었고 그에 이어 두번째 공식행사였다. 원래는 봄에 하는 행사인데 이번엔 정관을 정하는 두번의 임시총회덕에 가을로 연기했었다. 지난학기의 일들로 나는 학교를 만드신 분이 궁금했고 구글링을 통해 그 설립자분께 메일을 썻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세미나차 유럽에 오시는 길에 학교에 들르시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공개수업을 계획했다.  설립자인 이광택 교수님이 오신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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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회 학예회 이야기

017학년도 제 34회 브레멘 한국학교 학예회를 11월 18일 한국학교로 쓰고있는 독일 초등학교 식당에서 하였습니다.  오후 4시부터 행사이긴 했지만 우리 학생들,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들은 3시부터 모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전형적인 독일 가을 날씨여서 몇몇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한달이 넘게 학예회를 위해 연습하였던 지라 다들 들뜨고 즐거운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제일 처음 개회사와 함께 애국가 1절이 학예회 시작을 알렸습니다. 다음 특별공연으로는 독일 브레멘 괴테플라쯔 오페라 극장의 합창단 소속인 율리아씨가 „엄마 돼지 아기 돼지“  아이들과 함께 불러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돼지 소리가 날 때마다 큰소리로 같이 불러주었습니다. 율리아 씨가 본인은 한국어를 못하기에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었거든요.   사실 특별공연으로는 브레멘 대학에 재학중인 분의 장구 연주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 전통악기연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었는데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그런 기회가 자주 없어서 말이죠. 하지만 교장선생님과 약속하였답니다. 12월 내.. 2017년 올해가 가기 전에학교에 와서 장구 연주를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특별공연이 끝나고 교장선생님의 말씀과 귀빈인사가 있었습니다. 귀빈은  2000년도 초에 교장으로 재임하셨던 김영희 고문님이셨는데요 고문님은 브레멘 한국학교가 생긴 1983년도부터 함께 하셨던 분입니다. 항상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의지가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게다가 고문님의 큰아이는 1983년 생으로 브레멘 한국학교 졸업생입니다. 지금은 뉴욕의 의대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학교 출신들은 사회 주요 구성원으로 몫을 다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학생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1반 학생들은 플라스틱 컵으로 동물농장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음엔 개구리와 올챙이를 멋지게 불렀지요. 공연인데 아이들은 공연으로 생각하지 않나봅니다. 또 하고 싶다고 떼를써서 무대에서 힘들게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2반과 3반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별주부전“을 공연하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는데 그 대사를 그 짧은 시간에 다 외운 학생들이 기특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나 봅니다. 토끼처럼 영리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기대해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행사했던 사진도 같이 보았는데요 의외로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종종 사진을 함께봐야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으로 가장 큰 언니가 있는 4반, 외국인 학생들이 있는 반은 학예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추운 날씨 덕에 몇몇 학생들도 아파 오지 못했습니다. 다음엔 꼭 함께하길 기대해봅니다. 학예회가 끝나고 부모님들이 준비하신 식사를 함께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즐거운 행사를 즐겁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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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대학 콤파스 행사 이야기 11월 13일

2월 어느날 아이들과 함께 간 브레멘 과학관의 상설 전시장에서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그려진 동전지갑을 일본의 행운의 지갑이라고 설명된 소개문을 보았을 때 참 어이가 없었다. 검증도 하지 않고 전시한 박물관 관계자 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한국사람들의 책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 졌던 이유는 독일 속에 있는 한국아이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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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가 나아가야 할 길

 최근 플라톤국가론에 적혀진 말이 너무 좋아 적어놨었다.  교육은 단지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기본원리이자 핵심이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우리 브레멘 한국학교는 독일 현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의 뿌리를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인의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세계화된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노력하고 주 교육내용은 한국어, 한국사 그리고 한국문화이다. 학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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