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대학 콤파스 행사 이야기 11월 13일

2월 어느날 아이들과 함께 간 브레멘 과학관의 상설 전시장에서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그려진 동전지갑을 일본의 행운의 지갑이라고 설명된 소개문을 보았을 때 참 어이가 없었다. 검증도 하지 않고 전시한 박물관 관계자 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한국사람들의 책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 졌던 이유는 독일 속에 있는 한국아이들이 우리 것이라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표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귀찮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저 쪽 구석에 있는 나라라고 우리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게 아닐까…  그러기에 한국어 문화를 배우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을지도… 

내 한국어 수업에서 알게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고려인 후손이었는데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사는게 바빠서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동생은 지금 현재 인터넷 관리자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한국어가 배우고 싶어 내가 수업하는 곳에 오고 그 이후로 우린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대학때 활동하던 외국인 동아리 같은 모임의 장을 소개해주었다. 학교내에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단체였다. 외국인 학생들이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홍보하고 그와 함께 독일에서의 정착을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게 해주는 단체였다. 내가 학생신분을 벗어날 상황인지라 쉽지는 않았지만 관심있는 학생들을 이끌고 온다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 사진을 보고 분노하던 중 마침 재외 동포재단에서 문화용품을 지원해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겁도 없이 한복이 필요하다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게 3월 말쯤이었다. 그리고 영사관에서 7월에 연락이 왔다. 문화용품 지원 허가가 떨어졌다고 했다.  10월 말쯤 도착예정이라고 했다. 

막상 지원받는 다는 소식을 듣고 괜한 일을 벌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중 혼례복이 지원된다고 했기 떄문이었다. 프리젠테이션도 프리젠 테이션이지만 더러워지면 세탁은 어찌할 것이며 보관은 어찌할 것인가. 나야 좋다고 여기저기 프리젠 테이션을 하지만 아직은 누군지는 모르는 내 후임은 과연 기뻐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 진터…. 달라고 해놓고 못받겠다고 할 수도 없으니 프리젠테이션 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브레멘 대학 관계자에 연락도 하고 브레멘의 큰 Überseemuseum에 연락도 해보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조금 상심하고 있는 차에 브레멘 대학 관계자에게 연락이 왔다.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듣고 싶다고 했다. 

마침 관심있어하는 브레멘 대학 학생과 7월 말쯤에 브레멘 대학에 방문을 했다. 담당자학생에게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한국에 대해서 두시간 정도 행사를 하라고 주문했다. 현재 한국의 상황 개인의 눈으로 본 독일생활과 한국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면 된다고 했다. 

고민을 하다가 8월 초에 담당자인 쥴스에게 연락이 왔다. 행사 날짜를 잡아달라고 했다. 11월 13일로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10월 초에 쥴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홍보물도 완성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곤 결전의 날이 왔다. 11일 13일.. 하고 있는 재취업 과정덕에 그리고 주말에 주독한글학교 교사 세미나 덕에 전혀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마침 함부르크 총영사관에서 학생들을 위해 지원해 주신 평창올림픽 홍보물이며 한국여행가이드, 워킹홀리데이 가이드 , 그리고 잡지 등등이 행사를 더욱더 풍성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행사를 하는 장소는 30명이 채 들어가지 않는 작은 카페였는데 그 카페가 꽉 채워졌다. 나랑 현재 같이 한국어 수업을 하는 학생들도 왔으니 광고 효과가 톡톡히 있었다. 

나는 생활 한복도 입었다. 이번에 추석에 한국에 들어가서 사온 생활 한복이었는데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입으려고 사왔더니 아주 효과가 좋다. 

재외동포 재단에서 지원해준다는 혼례복은 없지만 생활 한복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시작은 위키페디아에 나온 한국 소개로 시작하였다. 한국은 크기가 어느정도고 사람은 얼마나 살고 1953년 이후로 휴전중이라는 것도 그리고 2017년 원래대로라면 현재 대통령 선거가 한참이어야 하지만 지난 5월부터 새로운 대통령이 지위하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북한과의 상황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냐 하는 것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6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휴전 상황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건지 별 감흥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만 봐도 나면 나는거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우리 나라에선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북한 지도자가 그것에 응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은 대화를 계속 시도하면서 그래도 경계태세를 멈추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주변국과의 협조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질문했다. 현재 대통령은 미국에 “Pro 인지 Contra 인지”대답해달라고 했다. 나는 현재 대통령은 반미도 친미도 아닌 우리 국민을 위해 서있는 분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굉장히 혼자 뿌듯했다. 

그 국민을 위해 주변 국가들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리고 또 주변국에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분이 대통령이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던 이런 행사를 하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니 브레멘의 지원이 그리고 함부르크 총영사관의 지원이 나에게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이런 행사를 통해 우리 잘 살고 있으니 지켜봐달라고 말 할수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대답에 학생들은 상황을 이해해주고 동의하여 주었다. 우리는 전쟁이 나지 않게 행동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무겁던 테마는 재미있는 한국드라마와 K-Pop으로 넘어갔다. 신나게 노래를 듣고나니 벌써 한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잠깐의 쉬는 시간 후에 두번째 테마로 나에대해서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육아와 출산으로 인한 경단녀이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소프트웨어 기술자라는 재취업과정을 나라의 도움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정 근무시간은 40시간 이지만 최장 62시간까지 최근 58시간으로 줄긴 했지만 그래도 노동자가 살기엔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나마 좋은 조건인 공무원과 대기업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휴가 역시도 독일과 비교할 수 없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독일 생활이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곧 그런 날이 올꺼라고 기대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 아이들 세대엔 올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쉬어야할 권리가 있다. 

떠들다 보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고 쥴스는 나에게 시계를 보여주며 경고를 했다. 역시 떠드는 건 참 자신이 있다.. 단체장인 유타교수는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기회를 준 유타교수에게 나역시도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감사의 의미로 맛있는 저녁 부페를 사주었다. 행사를 한 카페에서 제공한 5유로짜리 부페였는데  50유로의 값어치를 가진 정말 맛있는 부페였다. 한국음식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걸로도 만족해야했다. 

이번 행사를 하고 난 개인적인 소감은 세상은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할 때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뜻을 모으는 동지들이 그래서 필요한 걸 지도… 

다음엔 주독한글학교 교사 세미나에서 받은 재미있는 경험을 적어봐야겠다.